| » 6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저소득층에게 싼값에 보청기를 파는 사회적기업 ‘딜라이트’를 만들었다. 뒤편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정현 대표, 오주현, 원준호, 신무양, 김남욱, 유병곤씨. 딜라이트 제공08 |
난청고통 전해들은 젊은이들
‘보청기값 내릴 수 없을까?’
창업 도전해 대량생산 개발
200만원→34만원 인하성공
`저소득층 우선 공급’이 원칙
“텔레비전도 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들려야 말이지…. 꼭 감옥에 갇힌 기분이야.”
3년 전 독거노인 목욕봉사를 하며 만난 할아버지는 늘 답답함을 호소했다. 관절이 불편해 나들이마저 쉽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겐 텔레비전이 유일한 친구였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그마저도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 봤다. “돈 모아 보청기 하나 사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한달에 기초생활보장 급여 40만원을 받아 월세 내고 나면 생활비도 빠듯해.” 할아버지는 그렇게 8년 가까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다고 한다.
‘보청기 가격이 저렴하면, 돈 없는 사람들도 소리를 잃지 않을텐데….’ 자원봉사에 나섰던 두 청년의 고민이 시작됐다. 고등학교 동창인 김정현(24·가톨릭대 경영학4)씨와 유병곤(24·경희대 경영학4)씨는 결국 해외 사례를 연구하며 ‘창업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방자치단체의 창업공모전에도 쫓아다녔다. 드디어 지난해 6월 서울시의 ‘2030 청년 창업 프로젝트’에 선정됐고, 12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도 6명으로 늘었다. 저소득층 청각장애인에게 싼값에 보청기를 파는 사회적기업 ‘딜라이트’는 이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패기만으로 무장한 청년들에게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시중에 유통되는 보청기의 가격은 150만~200만원 수준이었다. 저소득층이 보청기를 사려면 파격적인 가격 인하가 필요했다. 유씨는 “세계적인 보청기 회사가 7곳 정도인데, 이들의 시장점유율이 95% 정도였다”며 “이 회사들 역시 보청기 부품업체 세 곳에서 부품을 받아 생산하는데, 유통과정에서 수입업체, 병원, 소매상 마진, 광고 등이 추가돼 가격에 거품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들의 ‘고객’은 돈 없는 저소득층이어야 했다. 보청기의 목표 가격을 34만원으로 정했다. 34만원은 정부가 청각장애인인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보청기를 사라며 지원하는 보조금 액수다.
원준호(24·연세대 경영학4)씨는 “기존 보청기는 일일이 개인의 귓속 모양을 본떠서 맞춤형으로 제작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우리는 한국인 평균 귓속 모양을 데이터로 분석해 같은 사이즈로 50~60대씩 대량 생산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크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보청기에서 필요없는 사양을 제외했고,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작해 결국 판매가를 34만원까지 내렸다. 원씨는 “저소득층 청각장애인이 8만여명 수준인데,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딜라이트는 지금껏 서울의 노인복지회관과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보청기를 팔았지만, 9월부터는 인터넷 누리집(www.delightproject.org) 에서도 구매 신청을 받는다. 김남욱(21·카이스트 경영과학2)씨는 “대구에 있는 여고생이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께 보청기를 해드리고 싶다며 사무실로 전화를 해왔다”며 “앞으론 지방에서도 손쉽게 보청기 구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인터넷 판매의 원칙 역시 저소득층 우선 공급이다. 이 회사의 꿈이 ‘돈이 없어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딜라이트는 보청기 사업이 안정되면 저소득층을 위한 임플란트 공급 사업에도 도전하겠다는 당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황춘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