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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철로 추락해 '억울한' 죽음

유가족 측 "출구찾다 떨어져 사망했다"...주안역 측 "술 취한채 싸움벌이다 추락했다" 주장


   
▲ 주안역 측에서 고씨가 추락했다고 추측하는 지점(사진 상)과 열차에 치여 사고를 당한 지점(사진 하) ⓒ전진호 기자
안전지킴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이 전철 선로에 떨어져 열차에 치여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9일 저녁 11시 6분경 인천시 남구 주안1동 주안역 하행선에서 시각장애인 고모(시각장애 1급, 49)씨가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 건 당시 현장에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기 위해 배치된 안전요원 6명이 있었으나 고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특히 고씨가 사고가 난 지역에 있는 음성안내 유도장치가 고장 난 채 방치돼 있어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빚어진 사고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 열차기다리던 부부, 술에 취해 싸우다 추락?

이에 대해 인천 주안역 관계자는 “당시 안전요원의 진술에 따르면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 부부가 술에 만취한 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의자에 앉히려 했으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다른 승객을 도와주고 있는 사이에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목격자 역시 이들에게 술 냄새가 진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고씨가 추락한 지역은 우산과 신발이 나뒹굴고 있었던 하행선 뒤쪽 끝부분(철도근로자들이 이용하는 계단)으로 추정되며, 사망한 위치는 열차 끝부분인 ‘10-4’ 지점이다. 당시 기관사는 추락한 고씨와 이를 끌어올리려는 남편 임모(시각장애인 1급, 52, 대한안마사협회 인천지회 회장)씨를 발견하고 급정거를 했으나, 제동거리로 인해 부딪히고 말았다.”며 “사고 당한 지역은 기관사가 육안으로 확인하는 구간이어서 씨씨티브이(CCTV)가 없어 정확한 사실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하행선 끝 쪽에 표시된 점자블록과, 공사로 인해 ‘접근금지’ 표시줄을 발견하지 못한 채 걸어가던 고씨가 추락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실 확인은 경찰 조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우리는 답변할만한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안역 측이 '안전'을 이유로 설치했다는 '접근금지' 표시 줄. 그러나 사고지점과 멀리 떨어진 공사구역만을 표시해놓았다. ⓒ전진호 기자
◆ 추락지점 위치 서로 달라

그러나 임씨의 증언은 사뭇 다르다.

임씨에 따르면 “부부동반 동창회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주안역에서 하차한 후 흰 지팡이 대신 우산을 이용해 점자블록을 따라 출구를 찾아가던 중 선로 쪽으로 걸어가던 부인이 미끄러지면서 떨어졌다. 이를 끌어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열차에 치었다.”라며 “당시 열차를 발로 차고, 들고 있던 우산을 휘두르는 항의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우산을 뺏어갔다.”고 주장했다.

인천광역시시 각장애인복지관 김호일 사무국장은 “주안역 측의 당초 주장과 달리 이분들은 이곳에서 열차를 기다렸던 이들이 아니다.”라며 “주안역 측은 안전요원이 사건을 목격했다고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하지 않은 점 ▲열차 충돌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으로 추측컨대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 사고지점 근처에 설치된 시각장애인용 음성유도장치. 확인해본 결과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진호 기자
김 사무국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열차에 사람이 치였다면 튕겨져 나갔거나 (열차) 아래에 깔려 사체가 심하게 훼손됐을 텐데 그렇지 않다. 결국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음성유도기가 고장 나 열차에서 내린 후 방향감각을 잃은 고씨 부부가 하행선 뒤쪽으로 걸어가던 중 추락했고, 이를 구조하려다 열차에 치인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고원인과 추락지점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사실을 증명해줄만한 씨씨티브이가 설치돼있지 않은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는 경찰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전요원이 있었으나 사고당시 어떤 대처도 이뤄지지 않은 점 ▲음성유도시설이 고장 났으나 고장 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 등 주안역의 관리소홀로 인한 도의적인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 사후대처, 제대로 이뤄졌나

고씨가 열차에 치인 후의 대처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 고 직후 현장에 있었던 고씨의 딸에 따르면 “아빠에게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역전으로 뛰어갔지만 환경미화원 분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등 너무도 평안해 큰 사고가 아닌 줄 알았다.”라며 “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으나 역전 공무원은 물론 기관사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임씨가 고씨의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시각은 저녁 11시 11분, 10여분 후에 현장에 도착한 고씨의 딸이 119구급대에 신고한 것은 11시 22분, 즉 사고 후 20여분간 차디찬 철로에서 방치돼 있었다. 주안역 측은 사고지점이 씨씨티브이의 사각지대여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고씨의 딸은 “신고 직후 얼마 되지 않아 119가 도착해 누군가 미리 신고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구급대원은 ‘엄마가 미약하게 호흡을 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들것만 들고 왔지 산소호흡기 등 생명유지장치를 들고 오지 않았다.”라며 “긴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의사 역시 ‘오는 도중 사망했다’고 말해줬다. 결국 사고가 난 후 20여분 동안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사망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고씨의 딸이 119구급대에 신고한 시간. 고씨의 딸은 사건직후 20여분이 흐른 뒤였으나 기관사는 물론 안전요원 등 역관계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해 늑장대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전진호 기자
   
▲ 고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사랑병원 영안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상주가 된 딸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전진호 기자

한편 안마사협회 인천지부 등 시각장애인 단체들은 오는 31일 주안역에서 노제를 치르고 대규모 규탄집회를 준비한다고 밝혔으나, 장소와 시간 등의 이유로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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